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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필름 카메라를 구했다.
Olympus 35RC.
시리즈 최상위 버전인 35RD가 수리를 맡긴지 1년 반이 지났는데도 부품을 구하지 못해 수리점에서 수리를 못하고 있다.
구하기도 힘들어서 렌즈스펙만 하위버전인 35RC를 구했다.
테스트 겸 한 롤을 찍었다.
노출도 딱딱 잘 맞고 완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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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SLR수동필카처럼 필름을 장착하고 타버린 필름을 넘기기 위해 2컷을 공컷으로 날리는데
이 카메라는 멀쩡하게 둘째컷이 살아있다.
36컷짜리 필름을 끼우면 SLR수동필카는 대부분 36~38컷 사이로 나오는데
이 필카는 39컷까지 찍을 수 있다. 완전 이득이다.
앞으로 한 컷만 공컷으로 날리고 사진을 찍어야겠다.
사진 정보에 OM-1은 잘못 적은 것이다. 35RC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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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흑백필름을 찍었다.
구름이 환상에 가까웠다.
그래서 오후에도 좋을 줄 알고 아는분과 사진을 찍으러 나왔는데
오후가 되니 뭉개구름은 순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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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 앞뜰 둘레에 장미꽃이 이쁘고 멋지게 피어 있었다.
평소같으면 조리개를 개방해서 장미만 도드라지게 찍었을텐데
조리개를 완전 조여서 찍었다.
왜냐하면 이 카메라는 셔터스피드가 1/500s가 한계니깐.
rf 카메라들이 셔터스피드엔 인색하다.
단점이라기보다는
깊은 심도에서오는 편안한 시선의 사진을 찍을 경우가 높아져서 난 더 좋다.
사진은 다양한 시선이 장점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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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하고 석양을 보러 전곡항에 갔다.
오전에 보았던 구름은 온데간데없고
바람결 따라 안개처럼 흩어지는 구름이랄까.
근데 구름을 찍으러 온 것도 아니고
석양의 분위기가 언제나 좋았고
그 안에서 사진을 찍으며 노는게 좋으니
아쉬울게 한 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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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궁평항과 탄도항이 있지만
그곳에 잘 가지 않고 전곡항에 오는 이유가 따로 있다.
궁평항은 항 답지 않게 너무 관광개발이 되어 버렸고,
탄도항은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작지만 특이한, 전곡항이 좋고
전곡항에서는 즐거웠던 기억들 때문에
그 분위기에 살짝 취해 바람 맞는게 언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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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저녁이다.
하루종일 회색빛 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퇴근할 때 잠깐 열리는 듯 해서
바로 동네 중앙공원에 갔다.
요즘은 해가 길어서 늦은 퇴근임에도
잠깐의 석양빛에 같이 물들 시간이 된다.
새로 구입한 35RC로 찍은 필름을 확인하기 위해
나머지 컷들을 모두 찍어 보았다.
이 날 하늘의 오묘하게 예뻤던 느낌을 너무나 잘 담아주었다.
이 카메라 완전 맘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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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 카메라의 특이점은
정확한 구도를 잡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뷰파인더의 방식이 SLR 방식이 아니고 이중합치기 때문에
보는것과 결과물과의 오차범위가 크다.
SLR에 익숙한 사람은 처음에 무척 당황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의외의 구도라는 건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의도치 않았던 대상이 결과물에 나왔을 때 그 의외성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일반적이고 자연스럽고 보기 편한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주는 것 같다.
혹시라도 RF 카메라를 쓰고 싶어하는 분이 계시다면
완벽한 프레이밍을 꼭 버리고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단렌즈로 틱틱 찍길 바란다.
그것도 역시나 본인에게 훌륭한 사진으로 기억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