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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봄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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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계속 걸었다.

어제처럼, 그제처럼, 지난주처럼, 지난달처럼,

오늘도 길을 걸었다.

사진기를 들고.


오늘은

사진 찍는 18년 동안, 혼자서도, 그리고 그 누구와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오늘 걸었다.

지난 3년간 가족과 고향 친구만 빼고 아무하고도 연락 안 하며 지냈던 고독의 나날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병, 그 고통과 혼란들을 모두 나 혼자 감당하며

혼자 지내는 게 어쩌면 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결정내리며,

모든 관계를 끊고 벗어나 혼자 지냈던 지난 2~3년 동안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나는 걸었다.


오늘도 걸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났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서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서로의 시간과 공간이 변하고 변하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다가

우리는 서로 만났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놀라울 정도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곳에서 만나지 못했었도, 그다음 목적지가 탄도항이었는데 그것마저 같았어서

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는 말문이 틔였다.

퇴사 후 거의 1년 동안 가족과의 전화 통화 말고는 말을 잃고 살았다.

오늘 참 반가워 '대화'라는 걸, 정말 오랜만에 늦은 밤까지 하게 됐다.

4년 만인가?

오랜만에 만났어도 그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편했고 즐거웠다.

근데,

난,

여전히

두렵다.

그래서 힘들다.

즐겁다가 다시 우울해질까 봐.

'걱정을 걱정하지 말자'라고 하며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현재를 충실하게 즐기자며

내 마음의 병을 치유하며 지내왔는데,

또다시 걱정을 걱정하게 될까 봐 두렵다. 

즐겁지만 두렵다.

이게 자존감을 뚝 떨어 뜨린다.

나만 변하고 모두 그대로였다.

그 발랄하고 깨방정 떨고 웃긴 얘기 잘하던 내가 참 차분하고 조용해졌단다.

변한 게 맞다.

차분해진 게 너무나 힘들다.

나도 알기에,

나도 내가 변했다는 걸 알기에,

그래서

오랜만에 정말 우연이 아닌 필연처럼, 가장 많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서 정말 즐거웠지만,

즐겁지만 두렵다.

변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늘 집에 와서 참 많은 생각에 잠겼다.

그 아주 일부를 여기, 내 일기장처럼, 생각을 적어둔다.

그리고 나중에 우연처럼 이 글이 '아 이땐 이랬었지' 하며 풋! 하고 웃어넘길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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