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까지
정말 정신이 나간 채 3일을 보냈다.
이 말은,
몸이 지친 게 아니고 정신이 혼란스러워 넋이 나간 채 3일을 보낸 것이다.
우울증, 불안장애, 그리고 초조가 24시간 지속되며 그것이 3일째이다.
결국 끊었던 약을 먹었다.
한 번에 3종류 약을 모두 먹었다.
한 알 이면 충분한데 3알을 먹을 만큼 상태가 안 좋은 것이다.
원인은 알고 있지만
남들이 보면 픽-하고 하찮게 여길 일.
근데 이게 과민반응으로 신경을 과민시켜 정신까지 나가게 만드는 병.
신경병증적 통증. 사실 많은 사람이 앓고 있지만 치료약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하며
신경정신학적으로 우울증과 불안장애 약을 먹는 게 도움이 된다.
끊었던 약을 오늘 한꺼번에 모두 먹었다.
조금 괜찮아졌지만 조금 증세를 약하게 할 뿐 여전히 힘들다.
미칠 것 같아서 오후 늦게 무작정 사진기를 들고 나왔다.
씻을 마음도 없다.
웃을 생각도 없다.
뭘 할 생각도 안 든다.
그냥 멍하니 넋을 잃고 있을 뿐.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참고 참고 참으며 해소하지 않고 혼자 꾹꾹 눌러 담아 결국 통증이 만성 신경통증으로 가는 병.
12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며 직장에서 얻은 병이다.
17년 전 너무 이르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렸던 내가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없어 꾹꾹 눌러 담고 스스로 감당하려 했던 고통에서 온 병이다.
며칠 전 이번 추석이 끝나자마자 피검사를 위해 간단하게 혈액검사만 하면 되는데 채혈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신경을 건드렸고 채혈과정에서 피 뽑는 간호사가 혈관을 못 찾아 이곳저곳 바늘을 찔러댔고
간호사가 급하게 혹은 당황하며 피를 뽑으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감염위험행위를 했다.
바로 팔이 아프기 시작했고 스치기만 해도 너무 아팠고 몸살이 났고 미열에 근육통으로 감기약과 진통제를 먹고 잤다.
하지만 현재 3일째 통증은 그대로이고 전혀 호전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다.
검사 한 왼 손으로 물건을 잡기 힘들고 끊임없이 욱신욱신 당기고 통증이 계속된다.
남들과 다르게 굉장히 신경이 과민해 있는 내 몸의 특성상
우울증과 불안증세가 급격히 올라갔고
정신은 넋을 잃은 채, 그렇게 3일을 보내고 있고 오늘까지,
나는 지금 누구에게도 이걸 쉽게 말할 수 없지만
삶의 무의미감과 무감각, 그리고 허무함, 몸의 정지 상태로 그냥 존재만 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런 나에게 하늘이 도운 걸까?
오늘도 역시 아침에 하늘을 보니, 어제 그제와 다름없이 너무나 낮게 흐린 하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날의 환경. 마냥 흐린 날.
그냥 잠만 잤다.
약을 먹으면 미치도록 졸리다.
한 숨 자고 오후 4시 즈음 깨니 햇살이 정말 눈부셨다.
물론 몸과 마음은 움직여지질 않지만
그냥 씻는 것도 건너뛰고 모자 쓰고 카메라만 챙겨서 무작정 나왔다.
약을 또 한 움큼 쓸어 먹고 전철을 타고 서울대공원에 도착하니
햇살에 반짝이는 장미가 정말로 눈부시게 나를 반기고 있었다.
약기운과 햇살의 도움으로 기분이 천천히 좋아지기 시작했으며
무작정 장미사진을 찍으며 한바탕 땀을 범벅으로 흘리고 나니
걸음조차 무거워 버거웠던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며 스스로 움직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람이 신선했음을 그제야 느끼기 시작하며
편안해진 마음으로 장미꽃을 처음부터 다시 찍기 시작했다.
정말 힘든 걸 지난 3년 동안 겪으며
삶을 포기할까 매일매일 같은 생각으로 무의미하게 지내왔고
누구에게 말할 수 없어 혼자서 속으로만 끙끙대며 지낸 지난 시간들.
이제 좀 예전의 나로 돌아오고 있다 싶어 약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진 모임에 다시 가입해서 사람들도 다시 만나 사진을 찍고 모임도 참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가볍게 지내왔는데,
안타깝게도 불치병이기에 이렇게 순식간에 무섭게도 증세가 다시 왔다.
정말 다시는 그 때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무섭고 삶이 무의미하고 가슴이 답답해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숨 막혔던 요 며칠이었다.
지금은 끊었던 약을 다시 최대치로 먹으며 그나마 견딜만은 한 상태이다.
지난 수 일 동안 흐린 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병을 치른 후 흐린 날이 며칠 지속되면 신경병증적 증상이 다시 심해진다.
나는 오늘 9월의 장미를 찍었다.
먹구름이 잠깐 걷히고 눈부시게 부서지는 오후의 햇살을 벗 삼아
혼자만의 햇살 장미를 만끽했다.
나는 오늘 기를 쓰고 예전 내 스타일의 사진을 찍었다.
올해 봄 이후로 처음인 날이었다.
정말 온 힘을 쏟고 나간 정신을 부여잡고,
진심 기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예전엔 그냥 마냥 즐겁게 찍던 그런 사진을 기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이젠 그래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겁이 난다.
힘들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 그 상황이 오면 못 견디고 죽을 것 같기 때문에...
그렇게
오늘 나는
9월의 장미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