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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카사진 - 한 롤 이야기

(필름사진) 한 롤 이야기 (Kodak Portra 400)(Canon EOS3)

요즘 구름이 참 멋지다.

원래 여름에는 필름으로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데

요즘 종종 필카를 들고나간다.

매일매일

오늘 하늘은 어떨까

오늘 노을도 예쁘겠는데 라는 생각이다.


 

 

 

 

 

하늘이 예사롭지 않다.

 

 

 

 


원래 포트라 400은 감도를 100에 맞추고 찍어 왔는데

이번은 400 그대로 찍어 보았다.

100으로 놓고 찍으면 채도가 짙어져서 코닥의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을 만끽할 수 있는데

조리개를 조여야 하고 셔속이 안 나오니 어쩔 수 없기에

이번 롤은 그냥 400으로 다 찍기로 마음먹었다.

 

 

 

 

 


엄청난 폭염이었다.

오이도 특성상 그늘 자체가 없다.

햇살이 마치 바늘 수백 개가 동시에 얼굴을 찔러대는 듯 엄청나게 따갑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30분 정도 오이도 해안가를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온몸은 땀으로 젖고 머리에선 끊임없이 닭똥 같은 땀줄기가 흐르지만 땀이 문제가 아니었다.

숨이 턱턱 막혔고 이러다 쓰러지겠구나 싶어

급히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오이도에 가면 꼭 가는 유일한 커피숍에서 더위를 식혔다.

 

 

 

 

 


오이도에 간 이유가 바다 일몰을 보기 위함이었기에

커피숍에서 한 시간 정도 쉬고 나니 일몰 즈음이 되었다.

기대를 품고 커피숍을 나왔는데,

그 맑고 엄청난 뭉게구름이었던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날이 어두워지더니 

갑작스레 폭우가 퍼붓기 시작했다.

바다라서 그런지 돌풍도 엄청났고

급히 비 피할 곳으로 갔는데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몰려왔다.

모두들 자기들도 일몰 보러 왔는데 이게 무슨 폭풍이냐며 놀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비라 소나기겠지 했지만

하늘을 보니 전혀 그칠 것 같지 않은 폭우였다.

 

 

 

 

 


 

30~40분쯤 흘렀을까?

밤이 됐고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오이도 전역에 크게 안내방송이 나온다.

폭우와 돌풍이 계속되니 해안가나 위험한 곳에서 대피하란다.

우산은 없고

비바람은 엄청나고,

비가 조금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며 몇 컷을 더 찍어본다.

 

 

 

 

 

 


사실 속마음은 오이도 야경도 찍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러다 사고 날까 싶어 집으로 향한다.

 

 

 

 

 


여름 뭉게구름 하늘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요즘이다.

문득 일몰이 아니라 쨍한 오후의 풍경을 담고 싶었다.

이촌한강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미루나무가 있다.

 

 

 

 

 


한참을 산책하듯 시민공원 산책로를 걷고 있노라니

요 며칠 신경 쓰였던 일들이 잠시 잊힌 듯 마음이 참 편안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마음 편하고 여유 있게 사진 찍은 날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인 게 나를 치유하는 일이란 걸 느낀다.

나에게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누구도 신경 쓰이지 않게

천천히 걸어보면

내가 얼마나 지쳐 살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편안한 마음을 잃고 지냈는지 알 수가 있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혼자인 삶은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두 번째일까?

포트라 400을 감도 400으로 찍은 게.

예상은 했지만

그간 찍어오던 포트라 400을 감도 100으로 놓고 찍어왔던 그 결과물과는 참 많이 달랐다.

인물촬영엔 감도 400이 딱 좋을, 그럴 만큼의 색감이었고,

나처럼 주변 자연과 일상을 찍는 사진엔 역시 감도를 100이나 50까지 놓고 찍으면 색감이 정말 확 풍부해진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불편한 부분은 감도 설정이다.

한 번 장착한 필름은 중간에 감도를 변경해서 찍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다.

그러나 포트라 400의 장점은

한 롤을 카메라에 장착한 후 찍을 때

중간중간 감도를 변경해서 찍어도 사진 결과물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포트라 400 필름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 때문이다.

낮에 감도 100으로 사진을 찍다가

일몰이나 저녁즈음엔 필요할 때 감도를 400으로 변경해서 찍는다.

지난 몇 년간 늘 그래왔고 결과물에 문제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어두운 곳에서 감도 100으로 찍을 때 흔들리는 사진이 더 문제다. 흔들린 사진은 쓸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필름 감도 때문에 필름카메라를 두대, 세대씩 들고 다닌다.

나도 필름 초보일 땐 종종 그랬다.

하지만 카메라당 렌즈가 한 개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똑딱이 필카로만 찍을 것도 아닌 이상

렌즈를 몇 개씩 들고 다녀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한대의 필름 카메라에서 찍다가 중간에 필름을 빼고 보관하고 감도가 다른 필름으로 장착하며,

그렇게 매우 번거롭게 찍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포트라 400이 전부다.

포트라 400이 좋은 이유는 감도를 변경해서 찍어도 결과물이 참 좋다는 것이다.

슬라이드 필름은 불가능하다. 관용도가 높은 고급 네거티브 컬러 필름이라서 가능하다.

흑백필름은 중간중간 감도 변경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번 롤도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