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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카사진 - 한 롤 이야기

한 롤 이야기 (Kentmere100)(Olympus 35RD)

내게 흑백필름은 참 오래 걸린다.

늘 흑백필름이 장전된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지만

모든 순간 흑백사진으로 찍는 건 아니다 보니 컬러필름과는 달리 한 롤 다 찍는데 한 달 이상 걸린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난 후 흑백필름 한 롤을 스캔받고 나면

그때 그때 생각에 잠시 잠길 수 있는 즐거움이 찾아온다.


흑백의 첫컷은 종종 사진이 겹쳐 나온다.

한 롤로 오래 찍다 보니 찍던 카메라에서 빼서 다른 카메라에 옮겨서 찍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롤도 그렇다.

이번 첫 컷은 오래되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겹쳐 찍힌 한 컷은 후암동 올라가는 골목 같다.

 

 

 

 

 

 

가을날 후암동 모 카페에서 사진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햇살이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혼자서 방아머리 해수욕장을 찾은 날이었다.

디카로 대부분 찍고 일몰즈음 필름으로 한두 컷 찍은 기억이 있는데

사진처럼 잘 안나왔다.

 

 

 

 

 

한참을 안 찍다가 오랜만에 흑백필름이 든 카메라를 들고나갔었는데 

오랜만에 구름이 이뻐서 한 컷 담은 것 같다. 

겨울을 앞둔 늦가을이었다.

 

 

 

 

 

 

기존에 활동하던 사진 모임에서 모두 나온 후

지금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진 모임에서 첫 모임에 나간 날, 세운상가이다.

참고로 기존 사진 모임에서 모두 나온 이유는

소모임 앱을 더 이상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당시 사진 모임 모두 소모임 앱에서 활동했었는데

소모임 앱에서 탈퇴하면서 모두 나왔다.

 

 

 

 

 

또 계절이 흘러 겨울날이다.

혼자 오이도에 갔다.

올해 겨울은 겨울답지 않게 덥다.

이 날도 봄날로 착각할 만큼 바닷가인데도 땀이 다 날 정도였다.

컬러 사진을 대부분 찍었고 흑백필름으로도 몇 컷 담았다.

 

 

 

 

 

 

이 컷 또한 필름카메라를 중간에 바꾸는 바람에 공컷이 생겼다.

 

 

 

 

 

카메라 수리점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일몰을 앞둔 시간 빛과 색이 정말 예뻐서

컬러로도 담았고 흑백으로도 두 컷 담아봤다.

불게 물든 하늘과 한강이 예뻤는데

흑백으로는 뭔가 부드러운 느낌을 담고 싶어서 셔터를 눌렀다.

 

 

 

 

 

 

겨울비로 주변이 연무로 가득한 오늘이었다.

연무로 인해  신비한 느낌의 풍경을 흑백으로 담고 싶어 나머지 컷들을 모두 찍었다.

 

 

 

 

 

 

흑백사진에 대한 인식은 보통사람들에게 다소 낮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요즘 시대에 무슨 흑백필름이냐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난 생각한다.

그럴 거면 컬러필름도 똑같고 DSLR이나 미러리스도 똑같지 않은가?

요즘 같은 스마트폰 사진의 시대에 크고 거추장스러운 카메라를 따로 챙겨 들고 사진을 찍는다고?

사진이 취미가 아닌 사람들에게 취미사진은 이제 거추장스러운 인식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이는 흑백필름에서 더욱 심해진다.

라이트룸에서 디카사진을 흑백변환하면 훨씬 더 편하고 좋은 느낌을 낼 수 있는데 굳이 흑백필름으로 찍는다고?

나는 말한다.

경험해 본만큼 보인다.

소위 MZ 세대에게 흑백필름은커녕, 똑딱이 디카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 MZ 세대들이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아날로그와 빈티지를 경험해 보기 위해 

지금 똑딱이들과 캠코더, 필름카메라들이 유행 중이다.

흑백필름이 디지털 흑백보다 좋은 게 뭐냐?

늘 받는 질문이다.

이젠 대답하기도 귀찮다.

그냥 즐기는 거라고 대답하고 대화를 끊어낸다.

 

대부분의 사진을 혼자 다니며 찍고 있다.

과거엔 사람들과 함께 찍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만 사람들과 함께 찍곤 한다.

나는 내 사진을 찍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기에 더욱 혼자 찍으러 다닌다.

남들이 알아줄 필요도 없고 SNS에서 많은 반응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이젠 오직 나만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런 의미에서 흑백필름사진은 나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다.

이번 롤도 그렇고 흑백필름사진은 한 롤을 다 찍는데 기간이 평균 두 달 정도 걸린다.

흑백사진 한 롤 안에는 그새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진 과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흑백필름사진은 정말 소중한 사진들이다.

다음 흑백 한 롤은 내년으로 넘어가서까지 찍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