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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케니 지 (Kenny G)



봄날이었다.
개학하고 고1 음악 수업 첫날,
음악 선생님께서 음악실에 모인 우리 반에게
조용히 레이저 디스크 하나를 틀어주셨다.
레이저 디스크는 지금으로 따지면 DVD와 같은 것이었는데
색소폰을 부는 외국 남자의 라이브 공연 실황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시기의 우리들은
당시 신문물(?)에 가까웠던 레이저 디스크로 보이던 라이브 공연 실황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그가 바로 Kenny G였고, 나는 바로 그의 팬이 되었다.
하교 후 바로 시내에 있는 레코드샵으로 향했고
같은 앨범을 카세트테이프로 사들고 왔다.
몇 날을 워크맨으로 반복해서 들었는지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새로운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라이브 공연 앨범 속 가장 좋아했던 곡은
'Esther'이다.
어릴 때와 나이 들고 나서의 감상은 대부분 달라지는데
이 곡은 희한하게도 처음때와 비슷하다.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했던 그때의 내 모습으로
영원히 머물고 싶어 하는 헛된 욕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고등학생 때를 그리워하는 건 누구나 다 비슷하겠지.
추억의 무언가를 간직하며 우리는 그래도 살아가지 않겠는가.
나에겐 그중 하나가 바로 ‘Esther'인 것 같다.



‘Kenny G live 1989'
이 앨범은 명곡의 향연이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7080 문화를 생으로 경험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었고
유튜브도
카톡도 없었던
그 당시를
티브이와 라디오를 통해
있는 그대로 경험하며 자란 우리는 이 얼마나 행복한가.
치지직 거리는 스테레오 사운드에 빠져들며
FM 라디오로 먼 나라 팝송을 듣고
뉴키즈 온 더 블록에 열광했던 우리 또한 얼마나 생기도는 새대였던가.
빈티지에 빠진 요즘 세대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세대가 바로 우리 아니겠는가.
직접 경험한 우리 세대의 문화를 요즘 세대들은 간접 경험하려 한다.
음악 선생님께서 어렸던 우리 고1 학생들에게 케니지 음악을 틀어주시며 가졌던 마음이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다.
우리는 추억을 머금고 살아간다.
현재도 시감이 흐르면 추억이 될 터.
오늘 나는
오늘 우리는
그래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