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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카사진 - 한 롤 이야기

[필름사진] 한 롤 이야기 [Canon EOS 3][Kodak Proimage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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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필름 스캔을 맡기고 저녁에 바로 결과물을 받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와서 사실 마땅히 사진을 찍으러 다닐 곳이 많지가 않아

띄엄띄엄 사진을 찍은 기억이다.

그래도 한 달 만에 한 롤 이면 그리 오래 찍은 건 아니다.


 

 

 

 

마지막 가을 풍경이었다.

날씨가 좋았고

마지막 잎새를 사진으로 담듯 찍었던 기억이다.

 

 

 

 

 

볼 일을 보고 집에 오는 길목에 끝나가는 가을 단풍이 햇살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사실 디지털로 찍으려 했지만 메모리카드가 없는 바람에 필카로 찍었다.

복잡한 배경을 아웃포커싱으로 날려서 단풍 풍경만 담으려고 했는데

그냥 사람 덜 지나갈 때 빨리 찍어야 돼서 바로 막 찍은 사진이다.

 

 

 

 

 

한참이 지나고 초겨울 풍경이다.

그런데 날씨는 생각보다 따스한 날의 연속이었다.

가볍게 산책을 즐기는데도 입고 나간 패딩이 더운 나머지 땀이 흘렀다.

요즘 연말이라 예전 사진들을 꺼내보고 있는데

10년도 안 된 사이에 기후가 정말 많이 변한 걸 느낀다.

12월이면 칼바람에 추위와 싸워야 하는데

입고 간 패딩을 벗고 다닐 만큼 따스해 졌고

여기저기 철쭉과 개나리가 피어난다.

사진 산책을 즐기고 주변 자연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 기후변화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겨울이면 마땅히 갈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

혼출 일상 풍경 사진가에겐 더더욱 그렇다.

충동적으로 한강을 걷고 싶었다.

날은 마치 봄과 같았으며

입고 간 겨울옷이 더울 정도로 가벼운 티만 입어도 괜찮을만한 온도였다.

평화로운 평일의 한강변이었다.

 

 

 

 

 

12월의 둘째 주인데도 날이 계속 봄날 같다.

요즘 계속되는 과음으로 몸이 휴식이 필요해서 

사진은 안 찍고 쉬거나 짧은 산책을 즐기고 있었는데,

급, 필름 사진이 찍고 싶어서, 

명상 겸 서울대공원 호수가로 갔다.

명상을 정말 좋아한다.

평일 호수 풍경은 조용하고 평화로웠으며

춥지 않은 바람과 자연 소리가 참 좋아

오후 내내 명상을 즐기며 

해가 질 무렵부터 호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해가 질 때 즈음,

즐겨 찍는 포인트에서 가만히 일몰을 기다리는데

웨딩촬영을 나온 스튜디오 사람들이 와서 여기 배경으로 사진 좀 찍어야 하는데 양해를 부탁했다.

네네~그럼요~ 하면서 기다릴 겸 촬영하는 걸 구경했는데,

웨딩스튜디오와 종합 현상소에서 질리도록 웨딩사진을 현상, 스캔, 인화, 앨범 제작까지 해보면서

웨딩사진 찍는 사람들이 참 힘든 일을 하는 걸 안다.

주말, 휴일, 공휴일에 제일 바쁘고

연봉은 생각보다 많이 낮고

업무량은 미어터져서 늘 야근이 생활화되어 있고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업무팀과 지속적으로 연결된 작업이라

웨딩업체 직원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경험을 해봐서 다신 할 생각은 없다.

그만큼 여전히 힘든 직업이다.

 

 

 

 

 

평온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사진도 정적인 사진이 대부분이고

심심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이걸 나는 편안한 사진이라 부른다.

사진 초중반까지는

좀 놀랍고 색다른 사진을 많이 찍어왔지만

직장 생활과 사진 취미 모임에서 대인관계에 지치면서

사람들을 조금씩 멀리하게 되었고

점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사진으로부터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지면서

사진 생활 중후반부터는 이런 정적이고 단순한 풍경을 많이 찍기 시작했다.

 

 

 

 

 

 

사실 내 사진은 필름으로 찍는다고 별반 다를 게 없다.

디지털로 찍으나 필름으로 찍으나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진은 단순하다.

내 마음에도, 보는 이에게도 편안함을 주는 사진.

인기 없는 사진이지만 열 명 정도만 내 사진을 봐주고 좋아해 주면 난 만족한다.

사진으로 인기를 얻고 싶은 생각을 2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으며,

그저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 하나로 자기만족을 느껴왔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수많은 사진들을 보면 좀 피곤해진다.

유행과 주목과 인기와 이윤을 추구하려는 다양한 사진 계정들이 너무 많아졌고,

여기저기 화려한 사진 스타일이 여전히 유행을 타고 있다.

그래서 내 취향상 이런 사진들은 좀 지치는 스타일이다.

유행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목적 없이 사진을 찍는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내 사진을 '순수사진'이라고 부르곤 한다.

잘 찍고 맘에 들고를 떠나서 

인기와 관심을 떠나 순수하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느낌을 사진으로 담는 즐거움을 즐긴다.

필름 사진을 찍는 이유도 별다른 게 없다.

코닥필름을 쓰는 게 좋고

필름 카메라의 시원시원하게 넓은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바라보는 게 좋으며

필카의 셔터 소리가 너무 좋아서다.

일부러 필름 느낌이 좋아서 찍진 않는다.

디지털로 찍어도 내 사진은 모두 필름 느낌이라서 굳이 필름으로 찍을 이유는 없으니깐.

그냥 단순히 필름으로 찍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고 보면 된다. 재미있으니까.

 

 


인물사진은 안 찍냐는 질문을 가끔씩 받는다.

인물사진, 정말 많이 찍고 있다.

다만, 온라인상에 인물사진은 거의 올리지 않는다.

인물사진을 찍고 당사자에게 바로 주는 게 제일 즐겁다. 

예전엔 인스타그램 계정에 잠깐 올려보긴 했지만 아무 의미 없더라.

어디에도 내 인물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이곳 홈페이지에는 기록용으로 올리긴 하는데 나만 볼 수 있다.

사실, 사진 일을 하면서 인물사진에 꽤 많이 지쳐있긴 하다.

20대 후반부터 10년 정도를 필름으로 인물사진만 찍어왔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필름 사진이 소중하진 않았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유행을 타면서 모든 사진 모임이 디지털카메라가 전부인 시대였다.

디지털 카메라 초창기였고 그 인기는 대단했다.

나는 사진일을 하면서 현상, 스캔을 회사에서 직접 할 수 있어서 필름을 썼었다.

어쨌든,

이번 한 롤 이야기를 마치면서 드는 생각은

카메라는 피사체를 향해 있지만 결과물은 자신을 향해 있다.

그래서 다른 목적으로 사진을 찍기보다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소중한, 자기만의 사진을 많이 남기는 것이

시간이 흐른 뒤 더욱 소중한 사진이 된다는 것.

이렇게 한 롤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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