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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대한민국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대한 단상 (Canon 5D)

아래 사진은
한 겨울 밤새 눈이 내린 뒤
2시간 거리에 있는 올림픽 공원 나홀로 나무 앞까지
새벽 첫차를 타고 달려가서 찍은 사진이다.
해가 뜰 무렵, 여명빛에 나홀로 나무의 설경을 담고 싶어서 찍은 사진인데
모든 것이 좋았던 새벽이었다.
잠깐 사이 그 새벽에도 많은 사람이 나타나기에 
이 사진을 찍는 약 5분간의 시선은 내게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직업적으로든 취미로든 아님 일상의 대부분을 사진과 함께 사는 나 같은 비상업적 일상사진가에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과연 유의미한지 고민이 생겼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배경은
SNS 시대에 남자 포토그래퍼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작가주의적 사진을 유지함에 있어
다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은 전시(display)라고 생각한다.
내 사진을 다른 이에게 좀 더 많은 기회로 보여주는 것. 
과거 사진 흐름은 온라인 카페 문화였다.
회원으로 활동하며 다른 회원들과 쉽고 간편하고 의미 있게 사진을 전시할 수 있었고
유의미한 공유활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SNS 시대에 가장 쉽지만 거의 유일하게 사진을 효과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은 인스타그램뿐이다.
대한민국 사진의 대부분이 인스타그램에 모여있다.
하지만 사진은 또 다른 사진으로 변형하여
SNS에서 보다 노출이 많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리한 조건이 필요하다.
여자이고 노출이 많은 여자 모델이나 셀피 사진이고 예쁘고 어린 아마추어 모델이라는 것.
이 것 이외에 인스타그램에서 남자 사진가로서 인스타그램에 팔로워 1만 명을 넘기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1만 이상의 남자 사진가는 조금만 검색하면 대부분 검색 순위에 든다.
대충 잡아도 100명 내외이라는 소린데,
반대로 앞서 말한 유리한 조건의 계정은 일단 대충 예쁜 여자 사진만 클릭해서 들어가면 기본이 팔로워 1만 명 이상의 파워 계정들이다.
눈에 밟히는 것이 파워 여자 인스타 계정이란 얘기다.
현실에선 이성한테 끌리지 않는 외모를 가진 여자도 얼굴보정 앱으로 조금만 보정해서 셀피사진을 올리면 어떤 사진보다 인기가 많다.
그럼 이 중 사진계정으로서 여성 유저들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단 걸 말하고 싶어 지금까지 얘기를 끌어왔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직업적으로든 취미로든 아님 일상의 대부분을 사진과 함께 사는 나 같은 비상업적 일상사진가에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과연 유의미한지 고민이 생겼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 한국에선 사진가로서 활동은 무의미해졌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사진은 전시(display)인데 그게 사실상 불가능해진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진 경력과 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시대이다.
막말로 여자면 된다.
여자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사진가의 작가주의는 이제 보일 곳이 사라졌다.
오직 예쁘고 어린 여자면, 그게 모델이든, 그게 본인이든, 성공할 수 있다.
팔로워 1만 이상의 여자 계정들을 보라.
백이면 백, '협찬', '광고', '의류', '쇼핑몰' 등 돈이 되는 홍보수단이다.
순수하게 사진으로서의 여자 계정은 찾아보려 한 달 이상 인스타그램을 떠돌아다녀 보았지만 한 명도 찾지 못했다.
남자 사진가는 예쁘고 어린 모델 사진으로 계정을 채우면 된다. 그러면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남자 계정은 다리 역할만 하는 기능뿐, 결국 여자 모델 계정으로 팔로워만 모일뿐이다.
순수하게 남자 사진가로서 자신의 계정을 키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유일한 방법이 앞서 말한 예쁘고 어린 여자 모델 사진을 올리는 것뿐.
2023년 한 해 동안, 인스타그램 외 다른 사진 공유 공간을 찾아다녀 보았다.
결론은 하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스타그램 외에는 '없다'.
외국으로 시선을 돌려도, 몇몇 서비스가 있지만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보니 그 공간 안에서 스며드는 것 자체가 힘들다.
나는 그나마 있던 300명 가까지 되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을 정리하고
현재는 10명 내외이다.
내 사진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는 싶지만 사람들은 잘 찍은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돈이 되는 것이 최고의 개인 가치가 되어버렸다.
정신적 가치는 밀려났고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문화가 굳건히 자리 잡았다.
가족도 아니고 건강도 아닌, 개인의 돈을 소유하는 것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으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고,
인스타그램은 돈이 되는 것을 위한 요소로서 사진의 가치가 변했다.
돈이 되는 사진이란 무엇인지는 이미 서술했듯이,
여자이고 벗어야 하고 살색의 가슴과 엉덩이, 실오라기만 걸친 살색의 여자 몸매, 
이게 아니라면 예쁘고 어린 여자 사진이 돈이 되는 사진이 되었다.
그 외에 사진은 모두 외면받는 사회 분위기가 현재 대한민국 사진인의 현실인 것이다.
이 사이를 뚫고 성공? 한 팔로워 1만 명 이상의 인물사진 외 풍경사진가들은 몇백 명 안이지만,
이 사람들도 나름대로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사진이 대부분, 
작가주의적 사진을 유지하는 계정은 거의 없다.
관광지 소개, 핫플레이스 소개, 자극적이고 강한 색감의 사진과 동영상 게시물이 대부분이다.
취미든, 일상사진가든, 상업적 사진작가든,
이제까지 말한 돈이 되는 요소를 배제한 
순수한 자신만의 스타일로서 사진 게시물은 인스타그램 내에서 노출 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계정에 여자 모델 사진을 채우기 위해 '상호무페이 모델 모집', '모델촬영 모집', '모델 촬영 일정' 홍보에 자신의 계정의 방향을 잡게 된다.
남자 사진가의 인물사진 인스타 계정에 가보면 꼭 등장하는 멘트다.
'촬영문의 DM'.
겉으로 보기엔 순수하게 인물사진 찍는 게 즐거워서 이런다고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
순수하게 인물사진을 찍는데 
왜 자신의 인스타 계정의 조회수와 유입수와 좋아요 수를 늘리려 하는가?
결국 어리고 예쁜 여자 얼굴 사진이 자신의 계정을 채워야 유입수가 늘기 때문이고
이러는 이유 또한,
결국 자신의 계정과 인지도를 키워 결국 돈이 되는 수단으로 만드는 것일 테다.
근데 이렇게 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한계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계정이 꾸준히 커지는 게 아니라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본인의 계정은 예쁘고 어린 여자 모델 계정으로 건너가는 다리 역할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걸 얘기하다 보니 장황해졌지만,
정리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사진을 전시할 공간은 인스타그램이 유일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게시물이 더 많이 노출되려면 돈이 되는 요소를 갖춰야 하며
그 요소의 제1순위는 어리고 예쁘고 노출도 있는 '여자' 사진이다.
인기를 끌어야 돈이 모인다.
사람들은 인기를 얻기 위해 스스로든 타의로든  벗은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누구든 서슴없이 헐벗은 사진을 올려도 비난하기는커녕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좋아요가 쌓여간다.
현실에선 못생긴 여자여도 상관없다. 보정해서 올린 사진이 결국 SNS에선 자신의 얼굴이 되니까.
 
2023년 조사에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가치는 '돈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되었다.
이는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정신적' 가치가 아닌, '물질적' 가치를 최고로 뽑은 국가이다.
결국 
직업적으로든 취미로든 아님 일상의 대부분을 사진과 함께 사는 나 같은 비상업적 일상사진가에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대학교 졸업 후 한시도 멈추지 않고 21년동안 사진과 함께하며 실력과 경험과 가치를 키워왔지만
지금은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사진 잘 찍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예쁘고 어린 모델 벗겨놓고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조회수, 좋아요 수 폭발한다.
이게 2023년 사진가의 현실이라고 결론내렸다.
 


글 서두에 보여준 사진으로 돌아가본다.

 
이 사진은 5분 만에 찍은 사진이 아니다.
21년이 걸린 사진이다.
나에겐 당연히 소중한 사진이고 의미도 즐거움도 큰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진으로 돈을 벌기 위해 그 새벽부터 달려간 것이 아니다.
눈이 쌓인 풍경 속 나홀로 나무의 새벽 여명을 찍고 싶은 마음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사진을 함께 할 공간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것이 취미든 비상업적 사진가이든, 상업사진가이든
더 이상 전시(display)하고 공감하고 소통할 공간은 없다.
오직 광고, 협찬, 판매를 위한 사진과 온라인 공간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