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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

코로나 19 오미크론, 일상 그리고 사진

작년, 2021년 6월에 12년 넘게 다니던 회사가 파산했다.
사업을 접었고 팀 모두가 권고사직을 당했으며,
다른 팀 소수만이 사장님이 캠핑과 웹사이트 관리 업종으로 새 사업을 하면서
길었던 한 회사 사진 한 길의 끝을 마무리했다.





그 당시 직업병으로
만성비염과 디스크 아닌 목 통증과 허리 통증, 그리고 신경성 안면 치통으로 고생하던 차에
그래, 이 참에 좀 쉬면서 마음을 다스려 보자 했다.
업무적으로 꽤나 많이 지쳐 있었고,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장치가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엔 사진모임 활동으로 괜찮았지만,
이 시기와 맞물려, 모든 사진 카페는 와해되고 친했던 사람들과 젊은 20-30대끼리 2~4명씩 짝을 지어 사진을 찍는 형태로 바뀌었다.
게다가 모두 서울 모임였던지라 경기도민인 나에게 연락이 오는 이는 전혀 없었고,
역시 경기도민은 서울모임에서 외지인이구나란 생각과
서울 사진 카페는 서울 거주자 친목 카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퇴사 후 나는 오직 혼출만을 즐겼다.
그렇게 2021년을 마무리했다.






나는 설 곳이 없었다.
퇴사 후 2022년 1월까지 안부 문자나 안부 연락 하나 없는,
그전까지 그렇게 좋다고 다니던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뒤돌아보게 되었고,
나는 단호히, 안양을 비롯한 서울 사진모임에서 알게 된 모두와 관계를 정리했다.
2021년 6월까지 권고사직으로 퇴사를 할 때 까지도 정말 인생 최고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온라인 서비스 업체에서 사진 외길 경력뿐이고, 온라인 사진 시장은 이제 끝물이라서
쌓아 온 경력을 필요로 하는 다른 업체는 없다 보니, 앞길이 막막했다.
2021년 12월 말까지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그저 되는대로 지냈다.
일상의 패턴은 무너지고, 사진 찍으러 나가는 것조차 코로나19 확산으로 더욱 힘들어졌고,
처음에 계획했던 국내 시골마을 여행은 애당초 포기했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났다.





2022년을 맞이해서 그래도 내가 일할 곳은 있겠지 하며 취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4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나이와 경력에 맞는 회사는 단 한 군데도 없고,
이력서를 아무리 잘 쓰고, 포토그래퍼로서 희망직종을 변경해서 지원을 해도,
20~30대에게 서류 면접에서 밀린다는 것을 알았다.
고용노동센터 상담사 분과 수차례 전문적인 상담과 직업 소개 신청도 받아봤지만 역시 현실은
저임금, 저 연령대를 선호하는데서 이력서 통과가 어려웠다.
다시 자포자기한 상태이고,
5월부터는 뭐라도 일정한 생활패턴을 찾기 위해서라도 알바나 물류업이라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나에게 사진은 뭘까?
늘 고민을 했다.
현실적인 결론은, 그저 내 과거의 행적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수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해서 이게 돈벌이 수단(직업)이 될 수 없는 현실에 무너졌다.
지금 내 나이에, 이력서에 현장 촬영 경력을 나타내는 증명서도 없을 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도 몇 개씩 만들어 첨부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20대, 30대 초반을 이길 수 없다.
내 경력은 사진 출력 오퍼레이터이다.
이제 이 직종은 사라지고 있다.
아, 과거 필름 사진관들이 디지털에 밀려, 암실에서 하던 작업에 익숙했던 기술자들이
포토샵에 밀려 더 이상 설 곳이 없었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그 과도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나는 사람과 대면해서 일하는 데 부담감을 느껴
촬영은 취미로만 하고
출력과 제작기술을 연마하여 서비스하는 업무를 선택했다.
나는 후회한다.
그 때 반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당연히 그 당시에도 사진을 찍고 있었고
첫 회사 사장님의 추천으로 웨딩촬영 현장에 나가서 경험해보고 바로 이 쪽일 하는 건 어떠냐는,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임금과 업무조건을 제시해주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들어온 복을 차 버린 건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한다지만, 그 씁쓸함이 나에게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준 몰랐다.
요즘 봄 시즌이라 사진을 찍긴 하는데,
전혀 즐거움이 없다.
뭔가 의무적이 되었다랄까?
허무하다.





기술, 생산직이다 보니 컴퓨터 활용(엑셀, PPT)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단순사무를 지원해도 이 기본기가 안되어있다 보니 이력서 제출마저 입구에서 막힌다.
난, 무엇을 할까?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하는 직업의식을 갖고 있다. 이걸 주인의식이라고 한다.
성공과 승진과 더 높은 연봉, 이런 것에 중요성을 덜 두는 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 일의 즐거움과 파고듦, 그리고 거기에서 나아갈 수 있는 자기 발전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이런 걸 자기소개서나 특별활동란에 적어도
인사부는 그것보다 먼저, 나이와 낮은 연봉을 원한다.
물론 나도 연봉에 신경 안 쓰고 희망연봉도 제시하지 않았다.
실력과 업무능력은 들어가서 보여주면 되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글로밖에 표현할 수 없으니 인사담당자의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게다가,
2022년부터 비정형 안면 치통과 신경성 위장 통증으로 몸도 안 좋아지고
더불어 결국엔 코로나19에까지 감염된 후 후유증이 심하지만 딱히 치료나 처방약이 없어 근근이 버티고 있다 보니,
사진 찍으러 나가는 것조차 힘에 겹다.
사진 3~4시간 정도 찍고 오면 몸에서 열이 나고 굉장한 피로감이 쌓인다.
심지어 난생처음으로 눈에 실핏줄이 터져 한쪽 눈이 빨갛게 되면서
지금은 사진은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코로나 후유증만 빨리 괜찮아지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사진.
그건 나에게 뭘까?
직업이었고 취미였고 일상이었던 사진.


회식이 너무 그립다.
12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회식 하나만큼은 즐거웠다.
회사 규모가 점점 작아져 강소기업과는 복지 부분에서 비교하기 그렇지만,
전 직원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면 그렇게 즐겁게 놀 수가 없었다. 그립다.
술을 억지로 마시지 않아도 술에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었고,
다음 날 해장까지 시켜주던 그날들이 그립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지금 취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그리운 것 같다.
코로나19는 나에게 사람에 대한 회의감을 정말 크게 느끼게 해 주었다.
사진으로 수백 명을 만나고 얘기하고 연락하며 지내던 그 많던 사람들이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연락이 딱 끊기고,
후에 알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잘 지낸다고 한다.
아무도 나에게 연락하는 사진 동료는 없었다.
나의 문제 50%와 환경적 문제 50%로 결론 내리고,
모든 번호를 삭제했고,
모든 SNS 계정 친구들도 모두 삭제했으며,
오직 가족과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만 연락하며 지내오고 있다.
백수에게 너무나 많은 심리적 압박이 찾아왔고
그걸 견디며 지난 10개월을 보내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봄이 오면, 자연스레 사진에 흥이 붙겠지 했지만,
역시나 감기 후 먹는 밥처럼 아무 맛도 들지 않았고 목 넘김도 힘들었다.
사진을 찍는데 아무 느낌이 없게 되었다.

나는 기로에 서 있다.
사진기에 손이 가지 않게 되고,
오히려 원래 꿈이었던,
영화나 미디어, 혹은 음악 쪽으로 직종을 바꿔서 새 직장을 찾아봐야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일하고 싶다는 것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금전적 이유도 아니며, 집 장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전문가가 되어 창조적인 업무능력을 펼쳐 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한 회사에서 끝날 때까지 오래 일하며 삶을 살아가는 게 내 직업목표이다.
사진?
상업사진 실력가는 넘쳐난다.
내가 출력 사진에 경력을 쌓은 12년 동안 상업 포토그래퍼들은 그 기간만큼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고
그에 걸맞은 경력을 쌓아왔을 것이다.
존중한다. 그리고 인정한다.
내가 찍는 사진을 단순히 취미사진이라고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사진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의 이미지를 찾아 심상을 공유하고자 하기 때문에
마음의 이야기이고 사진 또한 나를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이기에
나는 그걸 내 삶의 사진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근데 3월에 코로나19에 걸리고 4월 지금까지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 사진에 '취미사진'이란 태그를 걸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사진을 나와 분리했다는 의미이다.
더 이상 내 사진은 내 마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즐기고 마는 취미사진일 뿐이다.


마치며.
사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에 정답은 없다.
어느 누구 하나 똑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사진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는 이쁜 여자 폰카 사진이 최고이고,
이것마저 유행이 지나 유튜브로 돈을 버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내 사진으로 돈을 벌 생각이 아직도 없다.
있었다면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내일도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사진을 찍으러 나갈 것 같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누구와 공유하거나 특정한 곳에 게시하며 자랑하고 소통하는 게 목적은 아니다.
오직 내가 찍고 내가 올리고,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고 하는, 아주 단순한 의미로 변했다.
봄이 오면 필름 카메라로 찍을 생각에 올해 초 흥분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필름과 10개 가까이되는 필름 카메라들은 고이 구석에 1년째 보관만 하고 있다.
이젠 그렇게 즐겨하던 색보정, 노출 조정하는 재미도 하나 못 느낀다.

지금 폰카가 아닌 사진기를 들고 인물이든 풍경이든 스냅이든 그 밖의 주제로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인물사진 모임 두 군데에 가입되어 있는데 참으로 활발하지만, 이 역시 일부 활동해오던 그들만의 리그이고,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 모임마다 겹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다.
풍경 모임은 무조건 새벽 출사가 기본이고 무조건 지방이다.
지역 모임은 사진은 대충이고 먹고 마시고 노는 데에 집중된 친목모임이다.
여전하다. 변하는 건 없다. 기존에 친했던 사람들만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그 사이에 끼어들기가 싫다.
그래서 나는 혼출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혼출!
혼자 즐기는 출사.
지난 3년간 혼출만 다니고 있다.
처음엔 신경안정을 위해,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서 원인 불명의 신경통증을 고치는데 전념했다.
많이 좋아졌다.
16년 넘게 출퇴근 만원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불특정 다수의 일반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를 판이었고,
그 결과물로 얻은 병이 '비치성 안면통증'이다.
혼출은 나에게 꿀 같은 시간을 보내게 해 주었다.
희망적인 5월 야외 마스크 해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하게 될 것이고,
예전만큼 다시 대인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 정도는 많이 가라앉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스트레스 면역력을 많이 회복했다.
이 긍정적인 변화에 혼출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회의감을 너무 크게 받은 나머지
고향을 떠나 외지로 나와 도시 생활을 오랫동안 하며 도시 사람들과 맺은 친분은 너무나 쉽게 끊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잘잘못을 따지는 건 아니고, 어쩌면 이건 나에게 최선의 삶의 방식이 아닌가 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원래 나는 고독과 혼자인 시간과 음악, 영화, 그림 그리기에 빠져 살던 아웃사이더였다.
즉,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도 역행해며 독을 빼내야 하기에 힘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직장은 문제가 많지만 정말로 큰 부담감은 안 들고, 오히려 투쟁력이 더 높아지고 있다.
지금 가장 큰 걱정은 코로나 후유증이 언제 가라앉을지이며,
이것만 해결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추진력을 얻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가 되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고,
어쨌든 나는,
내가 그 누구보다 더 관심과 실력을 다졌던
영화, 음악, 사진, 세계관과 정체성에 대한 보다 발전된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