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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카사진 - 한 롤 이야기

[Kodak Colorplus][Olympus XA] 한 롤 이야기

겨울이고

미세먼지가 일주일에 몇 일은 이어지니

사진 찍으러 갈 일은 현저히 떨어지고

게다가 필름으로 사진 찍을일은 거의 없다보니

이 겨울은

유난히 삭막하고 무료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을왕리해수욕장에 갔다.

사실 얼마전에 갔을 땐 너무 흐려서 사진을 찍는둥 마는둥 했었지만

이 날은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햇살도 반짝반짝 좋았다.






***

이 날도 일요일임에도 여지없이 미세먼지와 스모그로 최악의 날씨였지만

토일 연속 집에만 있기에 너무 허무해서

마스크를 쓰고 일요일 오후 잠깐 나왔다.

역시나 사진은 우울하고 축쳐진 느낌 그대로인다.






***

몇일동안 이어진 최악의 미세먼지의 날이 이어지다가 처음으로 푸른 하늘이 열린 날이었다.

푸르고 맑고 멋지게 열린 늦은 오후의 하늘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중국발 미세먼지가 증오심이 생길만큼 더욱 싫어진 날이었다.

아름다운 우리의 하늘.






***

일요일 별다른 약속이 없었다.

사실 올해부터는 출사도 많이 나가고

사람도 많이 만나려했는데

막상 현실은 보기 싫은 사람들이 모이는 출사 뿐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사람들과 함께하러 가기 싫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연락이 온 지인과 생각이 맞아

커피도 마시고 서해 일몰도 보고 왔다.

마음은 동해였으나 동해는 멀다.






***

사실 오후 2~3시쯤 하늘은

하얀 구름이 물감 퍼지듯 먹구름 비슷하게 드리워지고 있어서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오후 4시쯤 넘어가니 구름이 뭉실뭉실

햇살은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고맙고 마음이 즐거워지는 날씨였다.






***

붉은 해가 떨어지는 드넓은 해변을 바라보고 있자니

역시 사진은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해야 오래 오래 좋은 마음을 간직할 수 있구나란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사진은 사람이 중요하다.




***

사진이란게

사진만을 찍기 위해

어떤 시간 혹은 어딘가로 떠나는 건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이미 사진기를 처음 들고 다니던 20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쯤 했을 일이다.


지금 나에게 사진은

사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기 보다는

지금의 내가

누군가와 함께 기억될 아름다운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순간을 담는 일이 되었다.


사진은 잘 찍고 못 찍고는 점점 무의미해지고

이제 사진의 가치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 순간,

사진을 통해 그 때 그 곳의 기억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추억이 되고 있다.

나는 유행에 따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따르는 사진을

앞으로도 계속 찍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