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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바라보는 게 좋았다 (인스타그램활동을 줄이며 드는 생각)

바라보는 게 좋았다.

저 때의 시간, 저 자리, 저 햇살 아래 포근히

사진을 찍으며 걷던 걸음 멈추고

잠시 앉아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저 자리가 좋았어서,

사진 한 장 남겨두었다.

바라보는 게 좋았다.

 

 

사진이란게 그렇다.

사진이 느낌을 남기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볼 수 있고 그 사진에서 그 느낌을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다면

사진은 사진이 된다.

 

***

 

내 사진에서 관심과 시선들이 중요한 시기는 한참 전에 지났다.

보여주고 싶은 사진, 보여줘서 인기와 관심을 받고 싶은 사진.

나에게도 그런 사진을 찍었던 시기는 분명 존재했지만

이젠 그것이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나 목적이 되진 않는다. 

요즘 취미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인스타그램은 그것을 암묵적으로 부추기는 시스템 같다는 생각뿐이다.

인스타그램은 관심과 인기가 주를 이룬다.

 

***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는다.

아름답다는 건 손에 쥘수는 없어도 기억속에 오래도록 그 느낌을 담을 순 있는 것 같다.

살면서 잊혀지고 기억속에서 멀어져도

어느 순간 그 사진을 보면 다시금 그 때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는 것,

사진이란 게 원래 그런게 아니었던가?

 

***

 

나는 오랜시간 일상의 사진을 찍어오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추억하며, 무엇을 남기고 싶었던걸까?

어느 새 17년을 채운 일상의 사진들은

매번 꺼내볼때마다 느낌이 새롭고 추억에 잠기게 한다.

그럴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찍은 사진들 한 장 한 장이 모두가 소중하다.

인스타그램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해오면서 늘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내가 무슨 이유에서 이곳에 하루에도 몇장씩 사진을 올리며 보여주고 있었을까였다.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 내 사진 느낌을 공유하기엔 늘 부족했고,

순식간에 보고 넘어가는 수 많은 사진들 속에 내 사진도 함께한다는 느낌 속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은

사진의 느낌이나 생각보다는

한 눈에 보이고, 한번에 느낌이 오고, 강렬하고, 시기적절한, 유행스런 사진 위주가 되어 가는 듯 하다.

인스타그램은 사진 소비의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곳에 사진을 올리고 있었을까?

이런 저런 부분에서

찍은 대부분의 사진이 인스타그램으로 통하면서

나는 늘 부담스러웠으며

인스타그램은 점점 내 사진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란 걸 느꼈다.

몇 번을 다시 고민해봐도 결론은 늘 같았다.

결국 내 일상사진의 스타일과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공감하기에 인스타그램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흘렀다.

내 개인 사진을 굳이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느낌을 공유하려할 때

나는 이제 인스타그램이 아닌 다른 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모든 사람이 모여 있기에 벗어나기엔 큰 용기가 필요했다.

 

***

 

돌이켜본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홈페이지에 내 생각과 내 마음과 내 사진의 흔적을 남기는 게 좋았다.

이 곳, 홈페이지도 유지해온지 어느새 12년의 시간이 흘렀다.

쉽사리 잊힐법한 내 지나간 과거의 순간순간들이 이 홈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스타그램 시기에는 다소 소홀했지만

그래도 건너뛰지 않고 이 곳에 사진을 꾸준히 올린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

 

사진으로 추억하는 것.

내가 찍어 온 수 많은 사진들은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요즘 사진 흐름과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대중성이나 인기나 자랑이나 인증이나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어차피 내 일상의 사진은 대중성이 아닌 사적인 것일수밖에 없다.

나는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대세의 사진들을 찍을 능력이 없는게 아니다. 

노력을 한다면 그 누구보다 잘 찍을 순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그런 사진이 아니라 내 마음과 닮은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사진이다.

늘 내 마음의 이야기였으며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사진은 최고의 언어였다.

내가 개인적인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비슷한 마음끼리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

 

길다면 길고 어떻게 생각하면 여전히 짧은 시간이다.

사진이란게 사람마다 찍는 모든 컷이 다르듯

그 누구의 사진이 옳고 그름은 있을수가 없다.

다른 이의 사진도 모두 각자에겐 소중한 사진이다.

그 모든 사진들이 모여 사진 놀이터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즐긴다는 건 인생을 즐기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 같다.

각자의 소중한 방식으로 각자의 소중한 인생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사진이다.

나는 그 사진을 소중히 찍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찍어갈 것이다.

즐겁기도하고 소중하기도 한 사진 한 장 한 장이 모여

기억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

 

바라보는 게 좋았다.

저 때의 시간, 저 자리, 저 햇살 아래 포근히

사진을 찍으며 걷던 걸음 멈추고

잠시 앉아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저 자리가 좋았어서,

사진 한 장 남겨두었다.

바라보는 게 좋았다.